VC PEOPLE
글로벌VC를 향한
여정에 이정표를 세워나가다
아주IB투자 김지원 대표이사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걷는다는 것은 수많은 리스크와 함께 책임감마저 뒤따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가는 것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를 남기는 일이기에 신중 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긴 백범 김구 선생의 애송시(詩)와도 그 의미가 통한다. AC부터 VC, PE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사업모델을 안착시킨 데 이어, 10여 년 전 미국법인을 설립해서 글로벌VC를 향한 도전의 길 위에 차곡차곡 ‘마일스톤’을 세워나가고 있는 아주IB투자 김지원 대표이사. 그가 품 안에 지니고 있는 꿈의 지도를 꺼내 함께 들여다보았다.
Q. 지난해 벤처창업진흥유공 분야 산업포장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큰 상을 받아서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제가 아주IB투자에서만 25년째 일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한 길을 걸으며 한국 벤처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투자자로서 함께 했다는 점을 많이 평가해주신 것 같습니다.
Q. 아주IB투자에서의 25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을 꼽는다면요?
매우 고통스러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주IB투자가 코스닥 상장을 마무리했던 2018년의 일인데요. 상장을 계획하고 해외투자, 기관투자자 유치를 위해 국내는 물론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하루 12개의 IR을 진행했는데, 하필 미·중 무역 전쟁이 막 시작되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이 미처 겪어보지 못한 패닉에 빠져들었어요. 해외 기관관계자를 만나도 자신들의 포트폴리오가 급락하고 있으니까 제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더라고요. 그 결과 공모가가 예상 밸류의 절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연기를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는데 회장님께서 저를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너무 높은 가격에 상장을 하면 주가가 빠질 수 있는데,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팔면 그걸 사신 분들에겐 올라갈 일밖에 없잖아’라면서요. 그 말에 큰 용기를 얻어서 과감하게 상장을 했어요. 물론 주가는 좋지 않았지만 그 이후 팬데믹 기간에 아주IB투자 시가총액이 1조 원을 넘는 등 고공행진을 했던 적도 있었어요. 꽤 쓰라린 경험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약’이 되었던 게 아닌가 가끔 생각해 봅니다.
Q. 1991년부터 기업금융에 몸담으셨는데, 그 기간 중 ‘VC업계의 변곡점’은 언제라고 보시나요?
우리나라 벤처캐피탈이 활성화된 계기는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려웠을 때였어요. IMF 구제금융 때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됐고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으면서 많은 자산들이 해외에 팔려나갔죠. 대기업에서 나와 실업자가 된 수많은 고급인력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국가적인 중대사였기 때문에, 정부는 그 대안 중 하나로 벤처산업을 육성했어요. 벤처캐피탈, 벤처 기업 육성, 창업 활성화라는 단어들이 쓰이기 시작했고 대량의 자금이 업계로 나오면서 많은 벤처캐피탈, 창업투자회사들이 설립됐죠. 그렇게 붐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버블이 생겨났는데 그걸 ‘닷컴버블’이라고 불러요. 이 버블의 붕괴로 많은 창투사들이 정리됐던 이 시기, 그때가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고 생각해요. ‘벤처캐피탈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시장의 환경을 확인함과 동시에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것도 함께 경험했으니까요. 그 시절을 겪으면서 생태계가 탄탄해졌고 당시 다져진 경험과 역량을 통해 지금과 같이 벤처캐피탈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세계적으로도 벤처생태계가 이렇게 잘 갖춰진 나라, 벤처캐피탈이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나라도 드물거든요.
Q. 그렇다면 대표님 개인 경력에 변곡점이 되었던 딜은 무엇인가요?
1999년 아주IB투자에서 VC 업무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두 번째 투자에 다 실패했어요. 회사가 1~2년을 채 못 버티고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구조조정 됐죠. 내게 투자 안목이 없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때 제가 투자했던 휴젤이 급성장을 했어요. 보툴리눔톡신을 생산하는 곳으로, 지금은 수조 원대의 기업이 됐죠. 함께 마케팅 전략과 재무 전략을 짜고 제가 직접 CFO를 추천하기도 하는 등 회사의 성장, 발전, IPO까지를 함께 했는데요. 제가 그 회사의 최초 투자자이자 유일한 투자자였고 그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Q. 일론 머스크가 인류 역사를 바꿀 투자 분야로 유전공학과 AI 를 꼽았는데 대표님 생각은요?
머스크가 제 생각을 읽은 것 같네요.(웃음) 당연히 AI와 바이오테크죠. 모든 기술은 ‘인간의 한계 극복’과 ‘생명 연장’ 두 가지에 집중돼 있어요. 인공지능도 이미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잖아요. 향후 관전 포인트는 이게 얼마나 진화할 것이냐 하는 거예요. 다만 VC는 챗GPT4, 챗봇 바드 등 생성형 AI의 고도화된 알고리즘을 만들어낸 빅테크 기업이 아니라 그걸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부문의 투자에 집중해야겠죠. 바이오테크 분야는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 만큼 ‘더 건강해지는 기술’ 즉 신약 개발과 헬스케어 부분에 큰 투자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일론 머스크가 유전자 치료제나 유전학적 기술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해요. 선천적 질환을 유전자적 치환이나 변형을 통해서 고쳐내는 것,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되는 치매를 극복하는 것은 인류가 바이오테크를 통해 반드시 이뤄내야 하죠. 그걸 우리나라 바이오테크 기업이 해내서, 우리 VC가 그런 기업에 투자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Q. 아주IB투자가 해외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재 아주IB투자의 총관리자산(AUM)이 2조4천억 원정도인데 해외의 대형 VC처럼 빌리언 달러 펀드를 만들려면 역량을 더 키워야 해요. 우린 그 선택지가 미국에 있다고 봤죠. 해외 VC들과 코인베스트(co-invest) 하면서 그들이 회사를 보는 관점, 트렌드를 익히고 있는데, 과거에는 한국과 미국 간 관점이 많이 달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그 격차를 좁혀보고 싶고, 미국에서 성공하는 스타트업 모델을 한국에 대입해보고 싶기도 해요.
Q. 아주IB투자의 해외투자 대표 포트폴리오를 소개해주세요
우리가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초기 전략을 세운 뒤 투자했는데 그 과정이 의도한대로 다 맞았던 사례이자, 엑시트까지 했던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두 개만 말씀드릴게요. 하나는 우리의 미국 법인 솔라스타벤처스 보스턴 팀이 투자했던 황반변성(wAMD) 치료제 개발회사 아펠리스입니다. ABC시리즈는 물론 프리IPO 까지 다 따라 들어가면서 나스닥에 상장했고 임상 2상에서 엑시트해서 많은 멀티플을 기록했어요. 미국에서 성공한 바이오 벤처 기업의 전형으로, 현재 그 회사의 밸류는 10조 원 정도입니다. 또 하나는 티빗커뮤니케이션인데요. 미국은 거의 M&A를 통해 엑시트를 하고 있고, 우리 역시 처음부터 M&A를 타겟으로 솔라스타 벤처스 실리콘밸리 팀이 투자했어요. 티빗은 고도화된 기술을 가진 광통신 부품회사로, 우리는 이 회사가 단일 아이템만으로 승부를 볼 게 아니라 통신사나 통신부품 취급업체들이 필수로 구매해야 하는 제품의 제조업체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녔다고 확신했어요. 그런 목적으로 투자했고 약 2년 만에 M&A를 통해서 회수했죠. 이처럼 목적을 갖고 투자해서 마일스톤을 달성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엑시트까지 했을 때 VC로서 매우 큰 성취감을 느끼는데요. 제가 아니라 저희 팀들이 이뤄낸 성과지만, 이런 성공스토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Q. 아주IB투자의 라이벌은 ○○이다?
아주IB투자는 VC, PE, AC 등 3개의 사업부를 가지고 있고 미국법인까지 하면 4개 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C부터 PE까지 전 과정을 하는 회사들이 지금은 많이 생겨났지만 기업의 생애 주기에 맞춰서 일하는 인력과 그에 맞는 펀드, 스테이지 별로 촘촘하게 구조화된 시스템을 통해 투자하는 회사는 흔치 않아요. 라이벌에 대한 질문을 주셨으니 부문별로 나눠서 이야기해볼게요. 먼저 PE는 한앤컴퍼니나 MBK파트너스처럼 큰 회사로 성장하고 싶어요.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죠. AC는 경쟁구도가 아니라 같은 생태계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거고요. 해외사업부는 좀 더 갈 길이 멀어요. 미국 법인을 만들고 사업을 시작한 지 11년 차가 됐고, 보스턴에서 ‘솔라스타’ 하면 모르는 VC가 없을 만큼은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규모 면에서 아직 스몰펀드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VC 분야만 떼놓고 본다면 ‘라이벌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된다’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Q. 아주IB투자 혹은 대표님이 원하는 VC 인재상은요?
‘스페셜리스트이지만 제너럴리스트를 꿈꾸는 VC’입니다. 벤처회사들도 이젠 기술적으로 상당히 고도화됐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고 가능성을 파악하려면 업계를 잘 알아야 해요. 스페셜리스트가 적합하다는 거죠. 심사역들은 자기 분야의 산업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투자를 시작할 것이고,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겠죠. 그러면서 연관 비즈니스까지 투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따라서 직진만 하기보다는 시야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한 산업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정리하자면, 각자의 산업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람, 역량을 확장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VC로서 성공할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이 존경하는 VC는 누구인가요?
존경하는 VC는 지유투자 양정규 대표님입니다. 제 멘토이시기도 한데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분입니다. 양 대표님은 우리나라 벤처캐피탈리스트 1세대예요. 제가 기억하기에 그분이 늦깎이로 미국에 유학을 가셨을 때 벤처생태계 속 VC의 역할을 보면서 ‘매우 의미가 크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인식하셨대요. 귀국 후 국내에도 막 VC가 태동하던 시기라 자연스럽게 원하던 일을 하시게 된 거고요. 그동안 굵직한 회사들을 경영해오셨고, 지금도 원로심사역이자 원로투자자, 원로VC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Q. 대표님은 어떤 VC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무언가로 기억되기보다, 그냥 후배들의 ‘고민 잘 들어주는 선배’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VC이기도 했고, PEF를 운영하 는 심사역이기도 했고, 지금은 AC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이 잡을 선택한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투자자, 실패를 줄일 수 있는 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조언과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선배 역할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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