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시작됐다. 모든 새해가 그러하듯 연초는 도약의 꿈을 꾸면서 다시금 시작해 보려는 심호흡을 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국내 정세는 불확실성으로 어려운 상황이고,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글로벌 기술 생태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이는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공동수장이 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지금까지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DC가 글로벌 기술 패권을 통한 미국 우선주의라는 하나의 질서를 향해 이토록 진용을 정비한 적이 있었나 놀라게 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기술 정책은 두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있고, 둘째는 「빅테크 규제완화」를 통한 미국 중심의 글로벌 디지털 경제질서 재편이 있다. 특히 빅테크 규제 완화 정책은 최근 몇 년 동안 놀랄만한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 왔던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디지털 자산, 우주산업 등 첨단 분야의 기술개발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술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미국은 글로벌 기술 패권을 다지며, 글로벌 기술 생태계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기술 패권 주의는 신기술, 혁신기술을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기반을 갖춘 국가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다.
I. 위기를 기회로
‘스타트업 강국’에서 이제는 ‘유니콘 강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지정학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2024년도 0.6%에서 2025년도는 2.4%로 전망되고, 2026년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4.3%로 전망된다
1. 이는 국내외 어려운 정세에서도 ‘벤처 투자·스타트업 생태계’의 견고함이 시장의 신뢰를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이미 그러한 생태계의 토양을 갖추고 있다. 2024년 12월 25일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의하면 2023년 벤처 기업의 총 매출액은 242조 원으로 재계 3위를 나타내 삼성, 현대차 그룹의 다음에 있으며, 종사자 수도 93만 5천명으로 4대 그룹의 고용인력보다 18만 9천명이 많다
2. 스타트업 게놈(Startup Genome)이 발표한 2024년도 「글로벌스타트업 생태계」
3 평가순위에서 서울이 9위로 2023년도보다 4계단 상승했고, 실리콘밸리 등 미국 소재의 도시권역을 제외하면 런던, 싱가폴, 베이징의 뒤를 잇고 있다. 2024년 「글로벌 혁신지수」
4 도 우리나라는 6위로 2023
1)
“OECD Economic Outlook”, OECD, December 2024,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oecd-economic-outlook-volume-2024-issue-2_d8814e8b-en.html
2)
2024.12.25 중소벤처기업부 보도자료 「2023년도 벤처 기업 총 고용 93만명, 총매출액 242조원」
3)
실리콘밸리 기반의 연구-컨설팅 기관인 startup genome에서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 전세계 여러 국가들의 창업 생태계에 대한 실태를 다각적으로 조사하여 순위를 매긴다. 24년 기준 55개국가 300곳 가량의 창업생태계(도시/권역), 4천5백만개의 업체를 대상으로 하였음
4)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서 매년 발행하는 지수로서 전세계 133여개국을 대상으로 혁신을 수치화하여 순위를 매깁니다. 국제 기구 및 기관의 데이터, 각 국가별 통계와 보고서, 대학 및 연구기관의 성과물, 민간 기업 및 시장의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평가함
24년 글로벌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 Startup Genome
24년 글로벌 혁신지수, WIPO
년도보다 순위가 4계단이나 상승했다. 그러나 이러한 순위 상승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스타트업 및 벤처 생태계 관련 글로벌리서치 플랫폼인 트랙슨(Tracxn)에 의하면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스타트업인 유니콘이 한국에는 32개가 있는데, ‘한국신용데이터’가 2023년 8월 마지막으로 유니콘 대열에 합류했고, 2024년에는 새로운 유니콘 스타트업이 탄생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유니콘 기업수가 50개에 이르며 2023년 10월 하마스와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2024년에 5개가 늘었다. 물론 유니콘 수가 그 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의 활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도 2022년 이후로는 유니콘 수를 발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각 나라별 유니콘 기업가치를 보면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베이징 등을 기반으로 한 중국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내수시장 규모가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 스타트업은 범국가 차원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타국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가 활발하여 유니콘으로 성장한다. 반면, 내수시장이 작은 이스라엘의 유니콘은 글로벌기업에 인수되거나 나스닥에 직접 상장이 된다. 미국 국무부 자료
5에 의하면 2023년도 기준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의 개수는 135개이며 외국기업으로는 캐나다, 중국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올해 사이버보안업체인 Wiz의 구글의 230억 달러(약 32조 원) 인수제안 거절
6은 유명하다.
5)
“2023 Investment Climate Statements; Israel”, U.S. Department of State, https://www.state.gov/reports/2023-investment-climate-statements/israel/
6)
“Cyber security startup Wiz reportedly rejects $23 billion acquisition proposal from Google”, AP News, July24, 2024
국가별 유니콘 기업가치
출처 : CB Insights, 2024년 12월6일 기준
그런데 우리나라는 우아한 형제들이 독일의 딜리버리 히어로에 4조 7천 억 원에 인수된 후에는 대규모 인수나 쿠팡의 뉴욕 증권 거래소 상장과 같은 사례가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평가나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높은 순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글로벌화 관련 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벤처 기업 실태조사에 의하면 창업기업이 해외만을 목표시장으로 한 비율이 2.1%에 그치고 있다7.
우리나라의 2024년 글로벌 생태계 평가 항목별 평가 결과
우리나라의 2024년 글로별 혁신지수 항목별 평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술혁신 패권 경쟁에서 기회를 바로 포착하며, 그 어느때보다도 우리나라의 벤처 투자·스타트업생태계가 도약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산업화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계기는 수출이었다. 뛰어난 인적자원으로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혀가며 내수시장을 벗어나 세계를 향해 활로를 개척할 때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스타트업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잠자고 있던 한국의 성장 DNA를 불러올 시간이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 강국에서 글로벌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각국의 정책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7)
중소벤처기업부, 「2024 벤처 기업정밀실태조사 보고서」, 부록1-15,1-16 창업당시목표시장(2022,2023 실태조사)
II. 정부의 역할
지금까지 이렇게 한국의 벤처투자•스타트업 생태계가 세계 10위권내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이후에도 지원을 계속하였던 정부의 역할이 컸다. 이제는 해외로 그 시장을 넓혀가기 위해서 정부가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가교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각국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그 나라의 고유한 지정학적 환경에 맞추어 펼쳐지는데, 이제 우리도 해외시장을 선점하고 해외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정책들에 보다 집중을 해야 한다.
1. 국가 전략기술 육성차원의 투자
이스라엘의 혁신청, 혁신기술에 대한 투자
이스라엘의 혁신청(Israel Innovation Authority)은 정부가 나서서 혁신기술의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신기술의 상업화를 주도한다. 그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스라엘 혁신청은 180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활동하는데, 양자역학, 인공지능, 생명공학 분야에서 길게는 15년을 바라보고 투자한다. 민간 벤처캐피탈이 투자를 꺼리는 실패위험이 큰 초기기업에도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이스라엘 혁신청이 글로벌 기술 트랜드를 “먼저” 읽어 내고 “긴“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는 근본적 힘은 이스라엘내에 존재하는 글로벌 기업 R&D센터와의 협업에 있다.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수할 때, 그 주된 목적을 R&D에 두면서 이스라엘의 하이테크를 이끄는 핵심 원동력이 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시작부터 엔비디아와 협업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지난 12월 7억달러(약1조원)에 인수한 AI 스타트업 ‘런에이아이(Run: ai)’가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딥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가 강조되고 있으나, “딥테크” 분야는 임팩트가 크지만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오랜 기간과 많은 자금이 소요되고 리스크가 높은 분야인 점(2019년 Boston Consulting)을 고려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펀드의 존속기간이 일반적으로 8년인데 이를 분야별로 차별화할 필요도 있다. 우수한 인재가 포진되어 있으며 인간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기대가 높은 우리나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국가차원의 장기적 지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또한 이런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방향을 가늠할 필요가 있는데, 글로벌 기업의 M&A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개발 협력 관계가 그 방향과 흐름을 읽는데 나침반이 될 수 있다.
2. 산업클러스터 형성
산업클러스터는 민관연의 협력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형성되며, 오픈이노베이션의 場이 된다. 세계적인 산업클러스터들을 보면, 자연발생적으로만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환경적 여건은 그전에 마련되어 있었거나 인재가 모여들기 시작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이 요소들만으로 현재의 결과를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는 그런 상황을 놓치지 않은 정부의 집중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
런던은 실리콘밸리에 이어 스타트업생태계에서 2위를 평가받고 있는 도시이다. 런던의 테크시티는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까지는 빈민가였으나 저렴한 임대료로 창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았던 영국정부는 2010년 테크시티 조성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영국정부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2008년에는 불과 15개였던 입주기업이 2013년에 1,340개에 이르렀다.
8 영국정부는 또한 핀테크 육성기관인 레벨39(Level 39)를 건립하고, 글로벌 기업 본사를 유치하기 위한 HQ-UK’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메타(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을 유치하여 글로벌 스타트업생태계를 조성하였다.
이러한 산업클러스터의 특징은 도시의 기존 중점산업분야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런던의 테크시티 역시 핀테크나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많다. 2024년기준 기업가치가 450억달러에 이르는 리볼루트(Revolut)도 본사를 런던에 두고 있다.
8)
Tech City – believe the hype?”, The Gurdian, Wed 1 May 2013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blog/2013/may/01/tech-city-fundinguk-startups?utm_source=chatgpt.com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클러스터
보스턴 역시 실리콘밸리를 이은 세계2위의 글로벌 스타트업 도시로서 산업클러스터의 모범적 전형이 되고 있는 지역이다. 물론 하버드, MIT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이라는 좋은 환경적 여건이 있지만, 이는 바이오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전에도 존재하였다. 본격적인 바이오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주정부 차원의 프로그램이 시작된 시점인 15~20년전이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보스턴이 바이오클러스터로의 부상한 시점은 2008년 메사추세츠주가 10년동안 10억달러를 들여 바이오산업 장려를 위한 프로그램을 발족하면서였다. 그러나 2005년부터 보스턴 지역에 학교중심의 연구가 아닌 전문가 집단의 바이오 연구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프로그램 가운데 글로벌 제약기업인 스위스의 노바티스가 보스턴에 글로벌 R&D 본사를 건립하면서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보스턴 유입이 시작되었다. 대형 글로벌 기업의 보스턴 이전과 이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한 스타트업들의 보스턴 유입 그리고 투자를 위한 자본의 이동이 바로 거대한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산업클러스터가 형성이 되면, 해당 산업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업클러스터’야말로 구성원들이 상호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상호간에 협력과 기회를 도모하는 살아 있는 생태계(eco-system)이다. 강력한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런던이나 보스턴의 사례와 같이 어떤 흐름이 감지될 때, 정부의 육성정책이 집중적이고 장기적안 플랜으로 제시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산업클러스터’는 오픈이노베이션 환경이 구축되어 글로벌 기업유치에도 매력적 요소가 되므로, 우리나라 벤처투자•스타트업 생태계가 글로벌생태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3. 해외인재, 스타트업의 유입을 통한 글로벌화
글로벌 벤처투자•스타트업 생태계는 하드웨어적인 것으로만 만들어질 수 없다. 생태계는 무릇 개체 간에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속성이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또한 마찬가지로 이 생태계의 구성단위인 스타트업을 상호 연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벤처투자•스타트업 생태계가 글로벌화되기 위해서는 해외인재나 해외스타트업의 국내 유입을 통하여 우리나라 자체가 글로벌 생태계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 영국의 비자제도
프랑스는 국내외 스타트업 정책을 통괄하는 ‘라 프렌치 테크’(La Frech Tech)의 일환으로 외국인 창업자 전용 비자제도인 ‘프렌치 테크 비자’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정부 지원으로 라 프렌치 테크는 현재 전 세계 100여개 도시에 창업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교류를 하고 있다. 영국 또한 기존 비자체계를 폐지하고 신규 비자체계를 도입하면서 외국인 창업자 전용비자로 “Innovator Visa, Start-up Visa”를 신설했다.
일론 머스크는 고급 인력 이민 개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또한 남아공 출신이다. 이스라엘도 1990년대 초반 소련붕괴 당시 유대계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면서 스타트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 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인재의 영입과 글로벌기업의 국내 유치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글로벌 벤처투자•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투자계약서 등 특히 법적으로 준비할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