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변수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만사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확률의 오차를 줄일 수는 있다. 가치 있는 정보를 얻어내는 네트워크,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통찰력, 그리고 변화에 대한 빠른 대처 능력을 통해서인데, 우리는 그걸 ‘전문성’이라고 부른다. 케이런벤처스가 가진 힘도 바로 그 전문성이다. 케이런벤처스는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분야 전문가들이 스스로 중심축이 돼 투자 기업이라는 크고 작은 톱니바퀴를 회전시키며 거대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Q. 케이런벤처스가 내년이면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그동안 지나온 길과 성과를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정현 대표입니다. 케이런벤처스는 2015년에 설립됐고, 당시 한국벤처투자가 신생 LLC(유한책임회사)를 대상으로 ‘마이크로 VC 펀드’를 기획해서 운용사를 모집했을 때 저희가 선정되면서 VC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팁스 운용사 선정, 국내 최초 엑셀러레이터 라이센스 획득 등을 통해 초기투자에 대한 전문성을 발휘해왔고, 연구개발 펀드나 소부장 펀드를 결성하면서 현재 8개 펀드를 운용하는 AUM(운용자산) 1,600억 원 규모의 VC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매년 한 개씩 펀드를 결성하려고 노력해 온 것과 ‘케이런벤처스는 소부장 분야의 전문투자 운용사’라고 평가받는 점을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LLC로는 유일하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사회에 합류하셨는데요. 그 계기와 향후 활동 방향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년 무렵에도 LLC들이 이미 존재해 있긴 했지만 케이런벤처스 설립 이후부터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서 많은 지원을 펼쳐주시면서 LLC가 급속히 늘게 됐고, 현재 많은 LLC들이 업계에서 활동 중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VC 지원 정책이 LLC 입장에서는 조금 미흡한 점이 있고, LLC의 성장을 위해서 건의 드려야 할 부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이사회 합류가 LLC의 성장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활동할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Q. 대표님은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삼성벤처투자·엠벤처·현대기술투자 등을 두루 거친 베테랑 심사역이신데요. 커리어를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거쳤습니다.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고, 이동통신사업부에서 기술영업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요. 당시 CDMA 이동통신 서비스를 준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경력을 쌓는 행운을 안게 됐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Y2K(밀레니엄 버그) 이슈로 인해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도 이동통신 경력자들을 찾게 되면서, 해외 컨설팅 펌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컨설팅 펌은 벤처캐피탈(VC)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는데요. 제게 VC 심사역을 할지, 컨설턴트로 활동할지 선택할 기회를 줘서 VC로 입문하게 됐습니다. 그 뒤 삼성벤처투자와 현대기술투자를 거쳐, 2015년 지금의 파트너들과 케이런벤처스를 창업하면서 총 25년 정도 투자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Q. 대표님을 비롯한 주요 파트너들은 ICT, 소부장 분야의 ‘강자’로 꼽히는데요. 주요 투자처와 해당 투자분야의 전망에 대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소부장 분야에 특화된 전문 VC로 현재 반도체나 2차전지, 디스플레이, 로봇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전 세계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1등을 하고 있는 섹터이기 때문에, 국내 스타트업과 투자기업들이 동반 성장할 경우 글로벌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저희가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약보다는 바이오 진단이나 헬스 기기, 바이오 소재 쪽에 집중해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입니다. 투자기업 가운데 주목할 곳은 최근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IT 분야 8.6세대 설비를 증설하려고 노력 중인 시점에서, 8세대 OLED의 증착 부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파인원입니다. 또한 2차전지 전기차에서 열 폭주로 일어난 화재가 이슈화되고 있는데 열 폭주 방열 시트를 만드는 보백C&S와 바이오 분야의 진단 솔루션을 보유한 프로티나, MCN(다중 채널) 솔루션 업체인 샌드박스네트워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Q. ‘기업과 모든 것을 함께하는 동반자적 투자’를 강조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케이런벤처스는 어떤 투자를 지향하시나요?
케이런벤처스는 지금까지 투자했던 기업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후속 투자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프로젝트 펀드를 만들어서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기업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지만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저희는 기존 투자기업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중 기술적인 경쟁력이나 성장성을 가진 기업들을 선별해서 집중 지원하고, 저희가 주주로서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VC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투자 사후관리 과정에서 경영진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고, 또 제가 거기서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래야만 회사가 어려울 때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주주로서, 파트너로서 회사 경영진들과 함께 고민하고 좋은 성과와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좋은 성과를 거뒀을 때 뿌듯하고,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때 많이 실망하게 됩니다.
안타까웠던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면, 저희가 투자할 때 해당 기업은 삼성전자에서 많은 수주를 했지만 그게 취소되면서 단기간에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됐습니다. 당시 대표이사와 함께 수없이 많은 SI, FI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열심히 뛰었는데 M&A나 투자유치가 되지 않아서 폐업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투자에 실패했다는 것도 뼈아프지만, 그보다는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기력함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대로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저희가 신뢰를 가지고 투자했는데 경영진들과 핏이 너무 잘 맞아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좋은 성과를 내서 상장 후 높은 수익률로 회수를 했을 때입니다. 저는 투자업체가 폐업을 하더라도 경영진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분들이 재창업을 할 때 의견을 모아 사업을 기획하고 그 사업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제가 펀딩 등 다른 지원을 하면서 성공스토리를 써나간 것도 매우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Q. 대표님께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투자 대상, 창업자 유형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투자를 할 때 회사의 기술력이나 경영진의 우수성을 보고 판단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분들이 ‘시장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투자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창업자들은 대개 자기 기술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성장 중인 시장이나 각광받고 있는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고객들이 어떠한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경쟁사들이 해결하지 못한 페인포인트(pain point)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자기 기업의 솔루션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아는 게 사업 기획 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이러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다른 경쟁사들과 차별화할 수 있고, 또 시장이 변화됐을 때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에 ‘시장에 대한 판단’을 가장 비중 있게 봅니다.
Q. 대표님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어떻게 읽으시나요?
요즘에는 워낙 많은 정보가 오픈돼 있고, 유튜브나 세미나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그보다는 기존에 투자한 업체들을 사후관리할 때 경영진들과 깊이 교류하면서 얘기를 경청하고, 같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회사가 신규 사업을 위해 개발전략들을 수립할 때 경쟁사의 동향이나 대기업의 기술정보를 공유하면서 산업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거죠.
또한 투자업체의 밸류업을 위해 대기업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생각하고 있는 기술의 방향성, 페인포인트들을 분석하면서 산업 트렌드를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서 저희만의 경쟁력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신규 업체를 발굴·심사하거나 기존 업체에 대한 사후관리를 할 때 많은 지침과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VC의 매력이 무엇인지, 어떤 VC로 기억되길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벤처투자의 심사역은 투자를 통해서 투자업체와 같이 고민하고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면서 정말 드라마틱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종입니다.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VC를 단순히 투자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고민하는 문제점을 같이 해결하고, 어려울 때 펀딩을 돕거나 신규 인력을 추천하거나, 사업기획 또는 마케팅에 도움을 드리면서 같이 성장하는 심사역, 또 투자기업에게는 은인 같은 투자자로 남고 싶습니다. 케이런벤처스는 과거 10년 동안 열심히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10년, 20년 꾸준히 성장하면서 존재감 있는 VC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케이런벤처스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면서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