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기를 직접 굽지 마시고, 구워주는 고기만 드시면 됩니다.”
그릴X는 분자 카메라 센서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고기 상태를 파악하고 각 고기의 상태에 맞춰 최적의 맛을 자동으로 구현 하는 자동화 고기 굽기 로봇이다. 일반적으로 고기 굽기는 식재료의 온도, 보관 상태, 불판 예열 상태, 표면 수분, 조리 공간 의 온도와 습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균일한 맛을 내기 어려운 조리법이다. 하지만 그릴X는 분자 카메라를 통해 조리 중 고기의 맛 상태를 실시간으로 숫자로 변환하는 AI 기술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리 중인 음식의 상태를 감지하고 맛을 수치로 나타내며, 목표로 설정된 맛을 내기 위해 조리 과정을 자동으로 조정한다. 맛을 수치화된 데이터로 정의하기 때문에 고기의 종류나 부위에 상관없이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그릴X의 개발사 비욘드허니컴은 삼성전자 리서치에서 인공지능(AI) 가전을 연구하던 정현기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2020 년에 설립한 회사이다. 처음에는 셰프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셰프의 고기 굽기 맛을 재현하는 ‘셰프 AI’ 콘셉트로 약 3년 만에 기기를 개발했고, 호텔 다이닝 등에 설비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유명 셰프의 요리를 분자 단위로 분석해 재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셰프 로봇으로 만든 요리가 팔리면 셰프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셰프는 예술가로서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2022년 CES 쇼케이스를 기점으로 입점 문의가 계속 들어왔고, 미국과 중동의 벤처캐피털(VC)로부터 투자 검토 제안도 받았다. 미국, 브라질, 싱가포르, 영국의 식음료(F&B) 회사들로부터 도 AI 셰프 로봇을 활용한 사업 제안이 이어졌다. 하지만 성공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이던 그때, 정현기 대표는 오히려 지금이 사업모델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는 시기였다고 한다. “셰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셰프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맛은 기본이고 인력의 생산 효율성을 얼마나 높이는지가 중요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요식업은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며, 그중에서도 고기 굽기(그릴링)는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매번 동일한 퀄리티를 보장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그래서 자동화가 어렵고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로 인해 고기를 구워주는 서비스가 당연시되는 최근 구이 음식점에서는 높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고기 굽기를 위해 매장 인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반찬 서빙은 로봇이 하더라도 고기를 굽는 일에는 인력을 줄일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페인 포인트를 비욘드허니컴의 ‘그릴X’가 파고들었다. 직접 개발한 분자 카메라 센서가 사람의 눈보다 정확 하게 고기의 그릴링 정도를 파악해 초벌 조리를 한다.
서빙 인력은 초벌된 고기를 고객의 식탁에서 마무리로 굽기만 하면 된다. 최종 완성물을 고객 앞에서 완성함으로써 시각적 인 효과와 맛의 극대화를 이끌어낸다. 이런 분업화 과정을 거치면 기존에 고객 테이블에서 고기를 완성할 때보다 5~10분 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서빙 인력 1명이 담당하는 테이블 수가 기존 4개에서 8개로 늘어, 2배 이상의 업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인력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전체적인 인건비 절감 효과도 크게 나타난다. 실제로 16개 테이블에서 5명의 서빙 인력을 운영하던 매장에서 그릴X 도입 후 인력을 3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월 250~270만 원 정도의 비용이 1명당 절약되어, 연간 6천만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매우 큰 비용 절감이다.
고가의 분자 카메라 센서를 직접 설계하여 양산 가능한 수준의 가격으로 구현
비용 절감도 중요하지만 맛의 품질이 향상된 점 또한 큰 장점이다. 기존에는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고기 굽기 정도가 결정되어 맛이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릴X는 분자 카메라 센서가 고기 굽기 정도와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해 동일한 맛과 품질을 보장한다. 일반적으로 분자카메라 센서는 최소 3,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이지만, 비욘드허니컴은 자체 적으로 개발한 센서 설계와 ai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보완으로 대당 50만 원 수준에서 분자 카메라 센서 기술을 재현했다. 이를 통해 각기 다른 음식과 재료에 대해 기기 스스로가 판단하고, 원하는 퀄리티의 결과물을 일정하게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점에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더욱 크게 반응했다. 각자의 요리 레시피에 맞는 최적의 굽기 상태로 제품을 제공할 수 있어 품질의 통제가 가능해졌다. 추가적으로 K-FOOD 열풍과 맞물려 글로벌 진출에 있어서도 별도의 교육 없이 맛을 시스 템화해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2025년 상반기에만 은비갈비, 고반식당 등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 100여 곳에 이미 납품했거나 납품이 확정되었다. 하반기까지 약 400여 개 기존 또는 신규 레스토랑에 제품을 공급하기로 프랜차이즈 본사들과 협의도 마쳤다. 이는 별도의 대형 마케팅 없이 오직 입소문만으로 이뤄낸 성과로, 향후 양산 설비 구축 과 제품 고도화를 통한 제작 기간 단축 등이 더해지면 사업 성과와 수익성 모두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현기 대표는 “진짜 승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국내 그릴링 시장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1/10 수준이고, 소고기, 돼지고기뿐만이 아니라 양, 닭, 생선류 등 식재료의 확장, 그리고 B2B용이 아닌 B2C 가정용 등의 용도 확장까지 시장이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해외에서는 국내 보다 인건비 증가 폭이 더 높기 때문에 인건비 증가는 요식업의 존폐를 위협하는 큰 요소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는 비욘드 허니컴에게는 오히려 기회이며, 이번 총 투자금 90억 원을 통해 해외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자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담당 심사역인 필자조차 비욘드 허니컴을 소개받을 때만 해도 “아무리 우리가 AI와 로봇의 첨단 기술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고기를 굽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생각과 편견이 있었다. 투자심의 위원들 역시 같이 그릴X가 실제로 적용된 매장을 방문해 매장에서의 활용 모습과 직접 구운 고기를 맛보기 전까지는 다양한 의구심과 질문을 가지 고 있었다. 하지만 매장이 적용된 매장과 그릴X를 통해 완성된 고기의 맛을 보는 순간 많은 질문과 의구심이 “아 그럴 수 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는 경험을 했다. 투자심사역으로서 시장에 대한 확장, 기술적인 우위, 영업적인 전략 등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역시 먹고, 마시고, 입는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는 다시 한번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오늘 저녁 그릴X가 적용된 근처 매장에 한 번 방문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를 바라며 글을 줄인다.
*비욘드허니컴은 부산에 본사를 둔 지역 스타트업으로 BNK벤처투자는 지난 4월 비엔케이 스토리지B 부산지역혁신펀드를 통해 Series B 투자에 참여했다.